차별금지법, 좋은 의도만으로 충분할까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자.”

이 말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군가 단지 여성이라서, 장애가 있어서, 나이가 많아서, 혹은 특정 지역 출신이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차별금지법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법안이다.

그런데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질까? 법이 실제로 적용되는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차별금지법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한 뒤, 그럼에도 제기되는 우려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차별금지법이란 무엇인가

차별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채용 공고에 “35세 이하”라는 조건이 붙고, 휠체어를 탄 손님은 식당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원룸 계약이 거절되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대우를 받는다. 이런 경험들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개인의 경제적 기회를 빼앗고, 심리적 위축을 가져오며, 결국 사회적 배제로 이어진다.

사실 한국에도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이미 존재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령자고용촉진법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법들은 각각 특정 대상과 특정 영역만을 다룬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학력에 따른 차별,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 등은 명확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법률 사이의 빈틈, 이른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이렇게 흩어진 규정들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고, 보호받는 사유를 폭넓게 규정해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고용, 교육, 서비스 이용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별, 장애, 나이, 인종, 출신 지역,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절차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로 OECD 회원국 대부분은 이미 유사한 성격의 법률을 갖추고 있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7년이다. 당시 정부가 입법을 예고했지만 무산되었고, 이후 국회에서 수차례 발의되었으나 매번 본격적인 심의 없이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약 17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법의 취지가 분명하다 해도, 실제 적용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 제기되는 대표적인 우려들을 살펴보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

가장 자주 제기되는 우려는 표현의 자유 침해다. 특정 집단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밝혔을 때, 그것이 혐오 표현으로 규정될 가능성이 있다. 학문적 토론이나 종교적 가르침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실제로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목사가 혐오 발언 혐의로 기소되거나, 젠더 관련 학술적 견해를 밝힌 교수가 징계를 받은 사례가 논란이 되었다.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이 자기검열에 나서게 된다면, 건강한 사회적 토론이 위축될 수 있다.

종교와 양심의 자유와 충돌한다

종교 단체가 자신의 교리에 따라 운영 방침을 정할 때, 이것이 차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종교 학교가 해당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교직원 채용 기준을 정하거나, 종교 시설이 결혼 예식 대상을 제한할 경우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개인의 신념에 따른 선택이 법적 제재 대상이 된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자유 침해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역차별 논란이 생길 수 있다

특정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다른 집단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채용이나 승진 과정에서 소수자 우대 정책이 시행될 경우,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런 갈등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집단 간 반목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법적 모호성과 남용 가능성

“차별”의 정의가 불명확할 경우 법적 불확실성이 커진다.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정당한 구별인지 경계가 모호하면, 기업과 기관은 혼란에 빠지고 개인은 일상적인 발언조차 조심하게 된다. 또한 악의적인 고발이나 소송 남용의 도구로 법이 활용될 우려도 있다.

해외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나

2019년 프랑스에서 꽤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학교 서류에서 ‘어머니’, ‘아버지’라는 표현을 없애고 ‘부모1’, ‘부모2’로 바꾸는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동성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보수파 의원들은 “무서운 이념”이라고 비판했고, 정작 동성부모협회에서도 “누가 부모1이고 누가 부모2냐”를 두고 싸움이 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차별을 없애려다 오히려 부모 사이에 서열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2022년 버몬트주 랜돌프 유니온 고등학교에서 논란이 터졌다. 여자 배구팀 소속 트랜스젠더 학생(생물학적 남성)이 여자 탈의실을 사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여학생 블레이크 앨런은 “탈의 중에 그 학생이 들어왔고, 나가달라고 했는데 나가지 않았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버몬트주 교육부 정책상 트랜스젠더 학생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는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학교는 불편함을 호소한 여학생들을 ‘괴롭힘 및 따돌림’ 혐의로 조사하고, 블레이크에게 정학 처분과 ‘반성문’ 작성을 요구했다. 블레이크의 아버지 트래비스 앨런도 SNS에서 트랜스젠더 학생을 “남성”으로 지칭했다는 이유로 축구 코치직에서 무급 정직 처분을 받았다. 결국 앨런 가족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23년 학교 측과 12만 5천 달러에 합의했다. 차별금지 정책이 다수 여학생들의 프라이버시 우려보다 우선시됐다는 비판과, 트랜스젠더 학생도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던 사건이다.


그럼에도 생각해볼 점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해서 차별 문제 자체를 외면할 수는 없다. 실제로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현행 개별법만으로는 보호받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법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더 나은 길은 없을까

모든 문제를 하나의 포괄적 법률로 해결하려는 접근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기존 개별법을 강화하고 사각지대를 메우는 방법, 법적 규제보다 사회적 인식 개선과 교육에 집중하는 방법, 차별 판단 기준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는 방법 등 다양한 대안이 논의될 수 있다.

차별 없는 사회라는 목표는 누구나 공유한다. 다만 그 목표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려면, 우리는 법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결과를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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