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왜 아직 필요한가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이 발의되면서 오래된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쪽에서는 “70년 넘은 냉전의 유물”이라며 폐지를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안보의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맞선다.
이 글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왜 현 시점에서도 필요한지, 그리고 폐지가 아닌 다른 방향의 논의가 왜 더 현실적인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 정전, 그리고 위협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한반도의 현실이다.
우리는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에 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것이다. 법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남과 북은 여전히 적대 관계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24년에도 수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핵 고도화를 공언하고 있다. 더 주목할 점은 대남 정책 기조의 변화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통일 대신 “두 개의 적대적 국가” 관계를 공식화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노골적인 적대 노선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이 “냉전의 유물”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냉전은 끝났을지 몰라도, 한반도의 냉전적 구조는 끝나지 않았다.
형법만으로 충분할까
폐지론자들은 “형법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법리적 한계가 있다.
형법의 외환죄를 보자. 제93조(여적)는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제98조(간첩)는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처벌한다. 핵심은 ‘적국’이다.
그런데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고권을 침해하는 반국가단체”라고 판시해왔다. 즉, 북한은 헌법상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다.
형법의 ‘적국’은 교전 상태의 ‘외국’을 전제한다. 그러나 북한은 헌법상 외국이 아니다. 여기서 법적 공백이 생긴다.
국가보안법 제2조는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고 정의한다. 북한을 ‘적국’이 아닌 ‘반국가단체’로 규정함으로써 헌법 체계와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형법으로 처벌하려면 북한을 ‘적국=외국’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이는 헌법 제3조와 충돌한다. 헌법이나 형법을 대폭 손질하지 않는 한, 심각한 법적 공백이 생긴다.

남용의 역사, 그러나 해법은 폐지가 아니다
국가보안법에 어두운 역사가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절, 이 법은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되었다. 민주화 운동가들이 “빨갱이”로 몰려 고초를 겪었고,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 아픔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거에 남용되었다는 사실이 곧 “폐지”의 근거가 되는가?
칼이 사람을 해치는 데 쓰였다고 해서 칼 자체를 없애야 할까, 아니면 칼을 휘두르는 방식을 엄격히 규제해야 할까.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법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적용하는 권력의 문제였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국가보안법 적용은 크게 줄었다. 법원도 엄격한 해석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단순한 북한 관련 발언이나 학술적 논의로 처벌받는 시대는 지났다. 여전히 개선의 여지는 있지만, 그것은 “개정”과 “엄격한 적용 기준 마련”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균형점을 찾아서
안보와 인권, 이 두 가치는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존해야 하는 가치다. 안보 없이 인권을 지킬 수 없고, 인권 없는 안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도 이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 “폐지”라는 극단적 선택은 안보의 한 축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반대로 “그대로 유지”만을 고집하는 것도 시대 변화를 외면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방향은 명확하다. 모호한 조항을 정비하고, 남용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며, 실제 안보 위협에만 엄격히 적용하는 것. 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법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다.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논의 자체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증거다.
다만 그 논의가 감정적 구호나 이념적 대립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 즉 정전 상태의 분단과 북한의 지속적인 위협이라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한 위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완벽한 법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 없이 폐지부터 논하는 것은 안보의 빈틈을 자초하는 일이다.
개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폐지는 시기상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