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80원 시대, 정말 서학개미 탓일까?
16년 만의 고환율, 뉴스가 말하지 않는 진짜 이유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넘어섰다. 이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올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하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려 16년 만에 최고치다. 당시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던 때였다. 그런데 지금, 특별한 세계적 위기도 없는데 환율이 그때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환율이 오르면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가장 먼저 체감되는 건 해외여행이다. 1달러에 1,200원일 때와 1,480원일 때, 같은 1,000달러를 환전해도 28만 원 차이가 난다. 해외 직구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물건인데 결제 금액이 20% 가까이 늘어난다. 수입 식품, 수입 원자재를 쓰는 제품들 가격도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환율은 이제 경제 뉴스에나 나오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지갑에 직접 손을 넣는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뉴스에서 말하는 이유가 과연 전부일까? 오늘은 환율 상승의 진짜 원인을 함께 살펴보자.
흔히 말하는 원인들, 과연 맞을까?
환율이 오를 때마다 언론에서 자주 언급하는 원인들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들이 있다.
비상계엄 때문이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환율이 급등했다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계엄 직후 환율이 크게 출렁인 건 사실이다. 정치적 불안정성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트를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환율은 계엄 이전부터 이미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2024년 초 1,300원대였던 환율이 계엄 전인 11월에 이미 1,400원을 넘어섰다. 계엄은 상승 추세에 기름을 부은 단기 이벤트였을 뿐, 근본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치 이슈 하나로 16년 만의 최고치를 설명하는 건 무리가 있다.
서학개미 때문이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 이른바 ‘서학개미’가 달러를 사들이면서 환율이 올랐다는 주장도 많이 들린다. 한국은행도 환율 상승 원인 중 하나로 내국인의 해외 투자 확대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서학개미는 어제오늘 생긴 현상이 아니다. 2020년 코로나 시기부터 해외 주식 투자 열풍이 불었고, 그 이후로 꾸준히 늘어왔다. 5년 동안 계속된 현상인데, 왜 하필 지금 환율이 이렇게 치솟는 걸까? 서학개미가 진짜 원인이라면 환율은 진작에 올랐어야 한다. 개인 투자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건 본질을 피하는 것일 수 있다.
달러 강세 때문이다?
미국 달러가 강해서 상대적으로 원화가 약해졌다는 설명도 자주 듣는다. 미국 경제가 좋고, 미국 금리가 높으니 전 세계 돈이 미국으로 몰리면서 달러 가치가 올랐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현재 미국은 오히려 달러 약세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를 보면,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데, 원화는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건 다른 나라와의 비교다. 유로화, 엔화 등 주요 통화들은 달러 약세 흐름에 맞춰 가치를 회복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원화만 힘을 못 쓰고 있다. 이건 미국 탓이 아니라, 우리 경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환율 상승의 근본 원인
환율은 결국 ‘원화의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환율이 오른다. 그렇다면 왜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을까? 근본적인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겠다.
첫째,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
민생지원금을 비롯한 각종 지원 정책으로 시중에 돈이 크게 늘어났다. 물론 어려운 분들을 돕는 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
쉽게 비유해 보자. 한정판 운동화가 100켤레만 있을 때와 10,000켤레가 풀렸을 때,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을까? 당연히 희소할 때 가치가 높다. 돈도 마찬가지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돈 한 장의 가치는 떨어진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환율은 자연스럽게 오른다.
둘째, 금리마저 낮게 유지했다
2020년 이후 한국은 미국보다 금리를 낮게 유지해 왔다. 돈은 물처럼 흐른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즉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높으니,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한국에 돈을 둘 이유가 줄어든다. 달러를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떠나고, 한국 투자자들도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 한국에서 달러가 빠져나가고, 원화를 사려는 수요는 줄어든다.
정리하면 이렇다. 돈은 많이 풀고, 금리는 낮게 유지하니 원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셋째,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노랑봉투법으로 대표되는 노동 규제, OECD 최고 수준의 상속세, 높은 법인세, 그리고 각종 규제 강화. 기업 입장에서 한국은 점점 사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고 있다.
기업이 떠나면 어떻게 될까? 외국 기업들이 한국 투자를 꺼리고, 이미 들어와 있던 외국 자본도 빠져나간다. 국내 기업들도 해외로 눈을 돌린다. 공장을 베트남에 짓고,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기는 식이다.
결과는 명확하다. 달러는 빠져나가고, 원화는 약해진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환율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정책이 만든 구조적 문제다. 단기 이벤트나 개인 투자자 탓이 아니다.
정부의 대응, 이대로 괜찮을까?
환율이 치솟자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그 방식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 있다.
국민연금으로 환율 방어?
최근 정부는 국민연금을 활용해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아서 환율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국민연금이 누구 돈인가? 정부의 돈이 아니다. 국민이 노후를 위해 모아둔 돈이다. 직장인이라면 매달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그 돈이다. 이걸 환율 방어에 동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걸까? 환율이 안정되면 다행이지만, 만약 손실이 나면 그 피해는 누가 감당하는 걸까?
정부의 고강도 시장 개입
오늘 정부의 고강도 개입으로 환율이 30원 넘게 하락했다. 하루 만에 30원이면 상당한 변동이다. 당장 환율이 내려가니 안심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문제가 있다. 우선, 자유시장경제 원칙과 충돌한다. 환율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게 원칙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면, 이건 사실상 “환율조작”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민감하게 보는 부분이다. 자칫 “환율조작국” 지정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개입은 일시적 효과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본 원인은 그대로인데, 응급처치만 반복하는 건 아닐까? 물이 새는 파이프를 테이프로 막아봤자, 언젠가 다시 터지게 되어 있다.
마치며
지금까지 환율 상승의 원인을 살펴봤다. 비상계엄, 서학개미, 달러 강세. 뉴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들이지만, 따져보면 근본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진짜 원인은 우리 안에 있다. 너무 많이 푼 돈, 너무 낮게 유지한 금리, 그리고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 이런 정책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고환율을 만들었다.
환율 문제는 단순히 외부 요인이나 개인 투자자 탓이 아니다. 정책의 방향이 경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환율은 경제의 체온계와 같다. 체온이 높다는 건 몸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해열제로 일시적으로 열을 내릴 수는 있지만,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않으면 열은 다시 오른다.
환율은 우리 지갑에 직접 영향을 주는 문제다. 앞으로도 뉴스에서 환율 이야기가 나올 때, 표면적인 설명 뒤에 숨은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